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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이야기

시편 묵상 II

네팔 한인교회 새벽 묵상_250616

 

제목: 심판의 하나님을 인정하고 겸손히 주를 구합시다.

 

1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 2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 3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주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 (셀라) 4 내가 오만한 자들에게 오만하게 행하지 말라 하며 악인들에게 뿔을 들지 말라 하였노니 5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6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7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8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거품이 일어나는 도다 속에 섞인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9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 10 또 악인들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시편 75 1-10]

 

 

오늘 시편 75편의 표제는 아삽의 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라고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서 알다스헷은 폐허로 만들지 마소서, 멸하지 마소서라는 탄원하며 구하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 75편은 탄원시에 속합니다.

 

많은 이들은 75편의 배경이 유다를 침략한 앗수르왕 산헤립의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즉 이 시편의 내용은 세상의 교만한 통치자들이 맹렬히 공격하는 가운데 유다가 간절히 주께 드리는 기도의 내용인 것입니다.

폐허로 만들지 마소서. 멸하지 마소서 주님의 간구만을 절대적으로 찾는 시인의 기도는 오늘 유다 공동체의 기도와 아주 가깝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시편에서도 앞서 50편의 감사로 드리는 제사처럼 시인은 감사의 이유를 먼저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감사는 오히려 주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에 감사한 것입니다.

1절에는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즉 주의 이름이 가까움에 유다 공동체가 감사함을 표현한 이유는 주님의 임재로 말미암음이요, 동시에 앗수르라는 대적들을 심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 공동체는 앗수르라는 나라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특히 히스기야 왕 시절에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남유다를 공격함으로 나라의 존폐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유다 공동체는 심각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마치 하나님은 계시지 않으신 것 같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끊어진 것처럼 아주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열왕기하 1935절을 보면, 십팔만 오천명이나 되는 군사로부터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유다에게 눈에 보이는 현실은 온통 어두움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악인을 심판하시는 믿는 백성의 재판장 되신 하나님을 믿고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이 시편은 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옵니다.

 

이란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주로 힘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힘과 권세의 상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182) 이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 되신다는 다윗의 노래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열 뿔 달린 짐승이 나옵니다.

보라 한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123)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하는 이름들이 있더라”(131)

 

뿔은 힘과 권세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권세나, 힘을 상징할 때도 뿔로서 표현하고 있고, 적그리스도나 세상 군왕들의 권세나 힘을 말할 때도 성경은 뿔로서 비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윗은 왕으로 기름부음 받을 때, 사무엘은 기름을 넣은 뿔병에서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음으로 하나님의 권세와 임재하심을 드러내었습니다.

 

이러한 뿔에 대한 이야기를 볼 때, 이 뿔이 악인의 뿔이냐 의인의 뿔이냐 하는 갈림길은 하나님이라는 중심점에 의해서 나누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역사책에는 나오지만, 성경에 나오지 않는 희대의 악인이 있습니다. 헬라 왕 안티오쿠스 4세인데, 우리에게는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다니엘서 724절의 열 뿔 중에 나오는 먼저 있던 자와는 다르고 전에 있던 세 왕을 굴복시킨 큰 권세를 가진 왕입니다.

실제 이 안티오쿠스 4세는 하나님께 대항해 말했고, 주를 믿는 사람들을 괴롭히며 학살했던 왕입니다.

안티오쿠스의 악행은 마케베우스서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큰 군사를 이끌어 예루살렘에 쳐들어갔습니다. 성전 깊은 곳에 있는 금, 은은 물론이고 값비싼 기물들을 빼앗고 찾아내는 대로 모두 약탈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죽인 다음, 오만불손한 욕설을 남기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심지어 율법서는 발견되는 대로 찢어 불살라 버렸다고 합니다.

기록으로는 사흘만에 8만명의 유대인을 죽였다고 합니다. 보이는 대로, 어른, 아이, 여자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유대의 관습대로 아들을 할례시킨 엄마를 아기와 함께 성벽에서 밀어 떨어뜨려 죽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신이 나타났다라는 의미를 부여해서 에피파네스라고 스스로 불렀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며 악행을 일삼은 안티오쿠스 4세의 최후는 비참했습니다.

그는 내장이 뒤틀리고 격심한 복통이 일어나, 들것에 실려가면서, 그의 몸은 썩어들어가 구더기가 들끓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몸에서 나는 악취를 견딜 수 없어 했는데, “죽어야 할 인간이 하늘과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치도 않다라며 신음하면서, 하나님께 예루살렘에 자유를 주겠다고 맹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거두어지지 않았고, 그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어느 산골짜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헬라 왕 안티오쿠스  4 세

 

힘과 권세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이 세상 만물 우주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만드신 분은 심판하실 자격을 갖추신 분이기도 합니다. 7절 말씀처럼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만이 낮추시기도 하시고 높이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의 잣대에 의해서 모든 것이 평가받고 판정받고 심판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누구든지 인정받고 사랑받고 높아지는 것을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명예라는 것은 우리에게 어느덧 중요한 위치로 자리매김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주시는 것이 아닌, 우리가 스스로 높아지고자 어떤 방법을 취할 때 그것은 우리 신앙의 위기일 수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낮아짐의 방법을 택하시고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런 겸손하신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자리에 올려주셨습니다.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역시 기꺼이 낮아짐의 방법을 택할 때에, 즉 모든 사람 앞에서 그들을 받쳐주는 밑받침이 될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더 높은 자리에 세우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니 그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오히려 충만히 경험하는 삶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처한 현장에서 낮아지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그것은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철저히 주님 앞에서 낮아지는 길입니다.

말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겸손히 주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다리는 낮아지며 주님을 바라보는 그러한 삶을, 주님께서는 가장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9, 10절에는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 또 악인들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이에 순종하는 우리의 삶은 어떤 죄악도 우리의 삶을 주관하지 못합니다. 말씀 순종의 힘과 능력은 참된 은혜로 나아가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참된 삶으로 말씀이 우리를 인도하며 보호하는 능력의 삶으로 우리를 나아가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주관하지 못하며 세상이 우리를 능히 감당하지 못하는 주님의 권세와 힘이 주의 말씀과 성령의 임재하심만이 우리를 바꾸고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인 줄로 믿고 그러한 삶이 늘 있어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기에 우리가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를 주님의 자녀와 일꾼으로 불러주시고 이렇게 우리를 이때까지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이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하나님을 모든 사람 앞에서 자랑하며 나누기를 원합니다. 그러함으로 세상의 권세가 우리 안에 침범하지 않도록 주님 늘 우리를 지켜주시옵소서. 세상의 유혹과 위험이 우리 안에 있지 않으며, 늘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임재하심의 그 능력이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소망이 되게 하옵소서. 모든 것을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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